계좌가 -80%였습니다.
숫자보다 힘들었던 건 다른 거였어요. 매달 월급에서 떼서 넣는데, 계좌는 안 오릅니다. 그때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문장이 있었습니다. “나 지금 돈을 버리고 있는 건가?”
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그때 손절하지 않았습니다. 그런데 “멘탈이 강해서”가 아니었어요. 그 시기에 제가 한 일은 딱 하나였습니다. 자료를 미친 듯이 팠습니다.
한참 뒤에야 그게 왜 효과가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만났습니다. 두려움과 불안은 다른 감정이라는 겁니다.
📌 이 글에서 다루는 것
- 두려움과 불안이 뇌에서 다르게 작동하는 이유
- 하락장에서 초보가 손절하는 진짜 메커니즘 (멘탈 문제가 아님)
-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는 3단계 실전법
- 제가 -80% 이후 실제로 만든 매매 규칙
- 못 버틸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

1. 그때 나를 무너뜨릴 뻔한 건 하락이 아니었다
돌아보면 -80%라는 숫자 자체는 견딜 만했습니다. 진짜 힘들었던 건 “이게 언제까지 갈지, 끝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”는 상태였어요.
레버리지 ETF에 처음 들어갈 때 제 머릿속엔 “3배로 오른다”밖에 없었습니다. 하락 시나리오는 아예 계산해본 적이 없었어요. 그러니 실제로 빠지기 시작했을 때 참고할 기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. 얼마나 빠질 수 있는 상품인지, 회복에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, 지금 이 하락이 정상 범위인지 아닌지 — 전부 몰랐죠.
기준이 없으면 감정은 무한대로 커집니다. 그게 제가 겪은 상태였습니다.
2. 두려움과 불안은 완전히 다른 감정입니다
이 구분을 소설 한 권에서 봤는데, 투자에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.
| 구분 | 대상 | 행동 | 지속 |
|---|---|---|---|
| 두려움 | 대상이 명확함 (호랑이, 절벽) | 가능 —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| 유한함. 대상이 사라지면 끝 |
| 불안 | 대상이 없음. 막연함 | 불가능 — 뭘 해야 할지 모름 | 무한함. 스스로 증식함 |
핵심은 세 번째 칸입니다. 두려움은 행동으로 풀리는데, 불안은 안 풀립니다. 대상이 없으니 대응할 방법도 없거든요. 그래서 불안은 계속 커지고, 사람은 결국 그 불쾌함을 끝내려고 가장 빠른 버튼을 누릅니다. 그게 손절이에요.
손절은 종종 “투자 판단”이 아니라 “불안을 끝내는 행위”입니다. 팔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죠. 손실은 확정됐는데도요.
3. 그래서 초보와 경험자를 가르는 건 “멘탈”이 아닙니다
흔히 “하락장은 멘탈 싸움”이라고 하죠. 저는 이 표현이 오히려 사람을 해친다고 생각합니다. 못 버틴 사람에게 “네가 약해서”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요.
실제 차이는 정보량입니다. 경험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.
- 이 상품이 과거에 최대 몇 % 빠졌는지
- 회복까지 보통 얼마나 걸렸는지
- 지금 하락이 정상 범위인지 이례적인지
- 그래서 지금 뭘 해야 하는지
이걸 알면 감정이 두려움이 됩니다. 무섭긴 한데 대상이 있어요. 대상이 있으면 대응할 수 있고, 대응하면 감정이 소모됩니다.
반대로 모르면 불안입니다.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안 풀려요.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.
4.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는 3단계
① 숫자로 이름을 붙인다 — 최대낙폭(MDD) 확인
막연한 공포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입니다. 지금 들고 있는(또는 사려는) 상품이 과거에 최대 몇 % 빠졌는지부터 찾으세요. 3배 레버리지라면 -70~80% 구간이 이미 역사에 있습니다.
“최대 -80%까지 열려 있는 상품”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, 대상이 생깁니다. 그때부터는 “끝이 없다”가 아니라 “여기가 대략의 바닥권이다”가 됩니다.
② 시나리오를 3개 적어둔다
머릿속에만 두면 안 됩니다. 손으로 적어야 대상이 됩니다.
| 시나리오 | 미리 계산할 것 | 미리 정할 것 |
|---|---|---|
| 좋을 때 | 예상 수익 구간 | 언제 일부 실현할지 |
| 보통일 때 | 횡보 시 얼마나 버틸지 | 적립 금액과 주기 |
| 최악일 때 | MDD만큼 빠졌을 때 총 손실액 | 추가 매수 여력이 있는지 |
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세 번째 줄입니다. 최악을 금액으로 환산해보는 것. “-80%”는 추상적이지만 “3,000만원이 600만원”은 구체적입니다. 이 숫자를 보고 못 견디겠으면, 그건 애초에 비중이 잘못된 것입니다. 하락장이 오기 전에 알아낸 게 이득이죠.
③ 대응 규칙을 미리 문서로 만든다
하락장 한복판에서 판단하지 않는 게 목적입니다. 그때는 이미 감정이 지배하니까요.
- 매수 조건: 얼마 빠지면 얼마씩 (감이 아니라 숫자)
- 매수 방식: 시장가 대신 지정가(LOC) 등으로 감정 개입 차단
- 손대지 않을 조건: 어떤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
- 확인 주기: 계좌를 하루 몇 번까지만 볼지
5. 제가 -80% 이후 실제로 만든 규칙
거창하지 않습니다. 오히려 단순합니다.
| 대상 | 규칙 | 목적 |
|---|---|---|
| 국내 커버드콜 | 전일 종가 대비 -2% 하락 시 정액 매수 | “오늘 살까” 고민 자체를 없앰 |
| 미국 레버리지 | LOC(지정가) 단계별 분할 매수 | 시장가로 감정 매매하는 걸 차단 |
| 공통 | 최악 시나리오 금액을 미리 계산 | 견딜 수 있는 비중인지 사전 확인 |
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아직도 계좌를 하루에 너무 많이 봅니다. 실시간으로요. 좀 병적이라 이건 제 숙제예요. 다만 “보는 것”과 “누르는 것”을 분리하는 데는 규칙이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. 규칙이 없으면 보는 순간 누르게 되거든요.
6. 그래도 못 버틸 것 같다면
이 글의 결론은 “버텨라”가 아닙니다.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.
①②③을 다 해본 뒤에도 최악 시나리오 금액이 감당이 안 된다면, 답은 멘탈 훈련이 아니라 비중 축소입니다. 아예 그 상품을 안 사는 것도 완전히 정상적인 선택이고요.
버티는 게 미덕이 아니라, 버틸 수 있는 크기로 들어가는 게 실력입니다. 저는 그걸 -80%를 겪고 나서야 배웠습니다.
🙋 제 얘기를 좀 보태면
사실 제가 레버리지에 처음 들어간 건 해외 출장 중에 유튜브로 독학한 게 전부였습니다. “3배로 오른다”는 말만 보고 손실은 계산조차 안 했어요. 그러다 -80%를 맞았고, 그 시기에 오히려 자료를 더 팠습니다. 여러 채널을 교차검증하면서 “미국 시장이 장기적으로 성장한다”는 걸 남의 말이 아니라 제 확인으로 바꾸는 과정이었어요. 지금 제 포트폴리오가 미국 시장 중심이고 지수추종이 60% 정도인 건 그 시기의 결과물입니다. 버틴 게 대단한 게 아니라, 버틸 근거를 그때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.
자주 묻는 질문
Q. 물타기(추가 매수)는 무조건 좋은 건가요?
아닙니다. 지수추종처럼 장기 우상향을 전제할 수 있는 자산과 개별 종목은 완전히 다릅니다. 개별 종목의 하락은 회사가 실제로 망하는 과정일 수 있어요. 이 글의 요지는 “물타라”가 아니라 “미리 정한 규칙대로 하라”입니다.
Q. 손절이 항상 나쁜 건가요?
전혀요. 규칙에 따른 손절은 리스크 관리입니다. 문제는 감정을 끝내려고 누르는 손절이에요.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. 그 손절 기준을 사기 전에 정해뒀는가?
Q. 자료를 얼마나 찾아봐야 충분한가요?
“최대 얼마까지 빠질 수 있고, 그때 내 손실이 얼마인지” 이 두 문장을 숫자로 말할 수 있으면 일단 충분합니다. 그 이상은 불안을 정보로 덮으려는 시도일 수 있어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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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글은 개인의 투자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것이며, 특정 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. 레버리지 상품은 원금 손실 위험이 크며,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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